확신 가운데 기뻐함
5월 21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자라나고 있단다. 준우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찬우와 현우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통해 그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될 거란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
그래.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해. 내 욕심을 위해서, 불평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실 거야.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단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아빠에게 모든 걱정과 두려움,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듯이 말이야.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용서와 사랑을 구하자꾸나.
준우, 찬우, 현우야. 기억하렴.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편이시란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크신 사랑처럼 말이야. 예수님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히브리서 13장 5절)라고 약속하셨어.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는 거야. 심지어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에도 말이지. 그러니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득 채우고, 그 사랑으로 열심히 살아가자꾸나.
자, 이제 함께 기도하자.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확신 가운데 기뻐함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귀중하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그분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들 안에 거한다. 그들의 욕망은 그분의 뜻과 일치하며, 그들의 탄원은 그분의 성령에 의하여 표현된다. 그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께서 주기를 기뻐하시는 축복들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수많은 기도가 드려진다. 믿음이 없는 기도들이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우상을 품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기적인 기도들이 있다. 그것들을 가볍게 해줄 은혜를 겸손하게 구하는 대신에 생애의 무거운 짐과 염려로 불평하는 까다롭고 성급한 기도들이 있다. 그러한 탄원을 드리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지 않았다. 그것들은 약속의 조건에 일치하지 않음으로 그들에게 성취되지 않는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의 뜻 행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격식을 차린, 장황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나아가듯이 진지하고 겸손한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의 슬픔과 두려움과 죄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소원을 아뢴다. 그들은 용서하는 사랑과 유지시켜 주는 은혜에 대한 확신 가운데 기뻐하며 그분의 면전을 떠나간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3년 9월 11일자). 예수께서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면 그대는 기쁨과 소망과 용기와 즐거움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결코 예수님과 분리되지 말라.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와 분리되지 않으신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통해 그분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깊은 사랑의 증거를 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의 유한한 힘으로 싸움을 싸우도록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심지어는 우리가 당신을 슬프게 할 때라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붙드신다. 그대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고무되어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열렬히 활동하도록 하라(서신 5, 18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