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God

우리의 높은 부르심

맨 위로
맨 아래로
글씨크기

하늘을 위하여 저울에 닮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창 41장 32절).
5월 13일
사랑하는 준우, 찬우, 현우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아신단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계획하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어.

준우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우리의 품성을 다 살펴보신단다. 마치 저울로 무게를 재듯이 말이야. 하나님의 저울은 항상 공평하고 정직하단다.

찬우야,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잡이와 같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이란다. 우리는 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

현우야,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못했을 때는 예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단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어.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해.

사랑하는 아들들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단다. 준우는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가고 있을 거야. 찬우와 현우도 예수님을 닮은 멋진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날 거란 엄마의 믿음이 있단다. 우리 가족 모두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가자꾸나.

이제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족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해 주시고, 주님의 율법 안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우리의 부족함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준우, 찬우, 현우가 주님 안에서 사랑과 겸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하늘을 위하여 저울에 닮

만사는 참된 척도에 달려 있다. 그 척도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율법을 배워 실천하므로 마음과 애정이 고양되고, 고상하게 되며, 거룩하게 되도록, 곧 작은 일에도 충성하도록 당신의 율법을 인간의 가장 작은 행위와 거래 가운데 두셨다(원고 62, 1896년). 하나님께서는 동기와 목적과 품성을 달아보신다. 모든 사람은 성소의 저울에 달려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다윗은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시 62:0)라고 말했다. 이사야는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사 26:7)신다고 말한다. 하늘의 하나님은 참되시다. 마음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동기도, 우리 안에 있는 비밀이나 계획도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공의의 표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한 개의 저울, 곧 당신의 거룩하고 변함없는 법칙 안에 담겨 있다. 설명하자면, 그 모든 요구들이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을 명시한 처음 네 계명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명시한 마지막 여섯 계명 가운데 구체화되어 있는 그분의 거룩하고 변함없는 법칙 안에 담겨 있다. “네 마음을 다하여…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우리는 이러한 표준에서 일점도 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마음과 정신과 혼과 힘을 다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한 쪽 저울에는 이것이 놓여지고, 반면에 모든 개인적인 품성은 반대편 저울에 놓여져 중량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 모든 사람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도록 고정된다.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라고 기록되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날에 부족함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으로 우리 자신의 동기와 행동을 면밀히 살펴서 모든 범행을 회개하고, 우리 죄인들이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를 굳게 붙잡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원고 65, 18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