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순결하고 사욕이 없는 믿음을 존귀케 함
8월 22일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 무가치하다고 느낍니다. 세상적인 권세와 지위를 가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곤 하지요. 마태복음 8장에 등장하는 백부장도 그랬습니다.
그는 병든 종을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모실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종의 병이 나을 것을 믿었지요.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태복음 8:10)
하나님의 선민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았을 때,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신뢰했습니다. 겸손하고 통회하는 그의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대는 어떠신가요? 우리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면서도, 주님만 바라보는 순수한 믿음을 갖고 계신가요? 이 시대는 많은 시련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 마십시오.
"진리로 방어벽을 친 품성은 아무리 압력이 거셀지라도, 하나님의 준비의 날이 가져올 환난이 아무리 혹심할지라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련과 시험의 날을 견딜 것입니다." (서신 114, 1895)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빛은 우리에게 도덕적 독립심을 주어 시련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에게 백부장과 같은 겸손함과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시고, 진리의 빛 가운데 행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의의 원칙이 자라나 삶으로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하늘은 순결하고 사욕이 없는 믿음을 존귀케 함
그 백부장은 자신의 무가치를 느꼈다. 그는 권세가 있는 사람이지만 통회하는 심령을 가졌다. 그는 권세를 행하는 능력을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집에 오시게 하기에는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꼈다. 그 백부장이 그의 수하에 있는 군병들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본질적인 것은 발해지는 그분의 말씀일 것이었다. 그는 그저 말씀만으로도 그의 종을 고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뢰했다. 예수께서는 그 말을 듣고 놀라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유대 나라는 그분께서, 오리라고 예언된 꼭 그대로 오셨을 때에 그들의 약속된 메시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여기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공언하지 않는 한사람, 이스라엘이 풍성하게 받았던 기회들을 갖지 못했던 사람, 주님께서 가장 거룩하고 귀중한 진리의 보관자로 삼으셨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훨씬 앞선 사람이 있었다. 참으로 누가 이스라엘 백성이었는가. 유대인 아니면 이방인, 야만인, 스구디아인, 종이나 자유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요 1:10, 11)다. 그러나 권세 있는 지휘관인 이 로마인은 중풍병에 들려 고통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 그의 종들 중 하나를 위하여 예수께로 와서 매우 열렬하게 탄원했다. 그의 단순한 믿음은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믿음이었다. 그는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내게 보이라\"고 요청하지 않고, 그의 고난당하는 종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그분을 그의 집에 모시기에는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말씀드린다.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는 분은 겸손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오셔서 거하실 것이다. …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 안에서 제시된 그 빛을 받아들이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들은 난관들과 위험 가운데서 도덕적 독립심을 갖고 곧게 서도록 해 줄 확고부동한 목적을 갖게 될 것이다. 진리로 방어벽을 친 품성 - 아무리 그 압력이 거셀지라도, 하나님의 준비의 날이 가져올 환난이 아무리 혹심할지라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련과 시험의 날을 견딜 품성이 형성된다. 의의 원칙이 안에서부터 밖으로 작용하여 그(의의 원칙)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서신 114, 1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