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대 백
6월 21일
준우야, 네가 만약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랑으로 붙들어 주렴. 그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걸 느낄 때까지 함께 해 주는 거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는 거란다.
찬우야, 설사 누군가가 우리에게 백 번을 잘못했다고 해도, 우리가 한 번이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먼저 사과하고 화해의 길을 열어주는 거야. 어쩌면 그 작은 우리의 실수가 그 사람이 계속 하나님을 떠나게 했던 이유일 수도 있거든. 우리가 먼저 겸손히 사과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백하게 될 수도 있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목숨 바쳐 구원하신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는 거란다.
현우야, 우리가 누군가를 도우려 애썼는데 상처만 받았다고 낙담하지 말자. 그들이 바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돼. 계속 우리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찾아 나서는 거야. 지치지 않고 사랑한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란다. (연도 미정 원고, 141)
준우, 찬우, 현우야. 우리 모두 사소한 의견 차이로 분열되지 말고 연합하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담대해질 수 있어.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의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해주시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걸 믿을 수 있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고, 나는 네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야. (원고 12, 1891년)
자, 이제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방황하는 영혼들을 찾아 나설 수 있게 해 주세요. 사소한 차이로 분열되지 않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하나 대 백
우리 앞에는 위대한 사업이 놓여 있다. 그리스도의 우리에서 떠나 방황하는 남녀들이 있다. 그들이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되어 돌아갈 마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때, 그들은 그대를 찾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붙들어야 한다. 그대가 방황하는 양을 발견할 때, 그를 우리로 불러들이라. 그리고 그곳에는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을 볼 때가지 그를 떠나지 말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아가라. 비록 그가 백 가지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그대가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른 부분이 있다면, 그대가 행한 일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치우고 그에게 다시 돌아갈 길을 열어주라. 아마도 그것이 영혼으로 계속 떠나가게 하고 있던 바로 그 일일지도 모른다. 겸손하게 그대의 한 가지 잘못을 고백하라. 어쩌면 그것이 그를 감동시켜, 울면서 백 가지 잘못을 고백하게 하며, 그것들을 길에서 치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한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혼과 저 영혼을 구원하기 애썼다. 그런데 그들은 내게 상처만 입혔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돕기 위하여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즉시 우리 안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낙담하지 말라. 여전히 그대 주변에 있는 죽을 수밖에 없는 동료 영혼들을 찾아 나서라. 지치지 않는다면, 그대는 수확을 거둘 것이다(연도 미정 원고, 141). 연합하라. 의견의 사소한 차이점이 작은 쐐기가 되게 하여, 그것들이 마음을 파고들어 서로 분리시키지 않게 하라. 대신,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대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대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는 대로,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어떻게 용서해 줄 것인지를 생각하라. 그러면 그대는 분명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의 의가 되는 하늘의 신임장을 가지고 그대의 요구를 하나님께 제시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곧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나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믿을 수 있다(원고 12, 18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