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믿음만이 시험을 통과함
4월 10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쓴 물을 마주하고 낙담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경외하며 믿는 대신,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였지요. 우리도 살면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하려 합니다. 그는 우리가 평안할 때는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고난과 실망이 찾아오면 우리를 낙심시키려 하지요. 그러나 상황에 좌우되는 믿음, 순탄할 때에만 유지되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모세는 곤경 속에서도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지요. 그것은 나무의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찬양과 감사로 가득 차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경험했음에도 그들의 믿음은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시련의 때가 찾아옵니다. 번영과 위로가 줄어들고,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사탄은 우리에게 곤란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들을 기억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과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일을 믿습니다. 저는 당신을 의지하겠습니다." 이런 고백 가운데 우리의 믿음은 더욱 자라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신 94a, 1896)
사랑하는 주님,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심을 늘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진정한 믿음만이 시험을 통과함
그러나 곧 그들의 믿음은 시험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그분께 진실되고 충성된 백성으로 그분의 백성을 얼마나 의존할 수 있는지 알고자 하셨다.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겉보기에 낙담한 환경에 부닥치자 그들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경외하고 그분을 믿는 대신 그들의 지도자를 비난했다. 이 세대의 백성들도 그렇게 행동한다. 사단의 유혹의 계획은 항상 동일하다. 만사가 잘 되고 번영할 때에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난, 재난 그리고 실망이 이르러올 때, 그들은 낙망한다. 환경이나 주위 상황에 좌우되는 믿음,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에만 살아남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곤경에 처한 모세는 주님께 부르짖었다. 구원함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이렇게 했어야 했다.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그토록 통렬한 비난들을 쏟아 부었던 그분의 종이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그분은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쓴 물이 달게 된 것은 나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름기둥 가운데 자신을 가리고 계시는 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의 능력이었다. … 그러고 난 후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복에 감사를 표시했는가? 그들의 심령은 그분께 대한 감사와 고마움으로 가득찼는가? 그들은 홍해의 제방 위에 서 있을 때 찬양의 예배를 드렸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그들의 믿음이 강화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 시련이 우리를 검증(檢證)하려고 닥쳐올 때, 우리 앞에서 번영과 위로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없고 다만 이런 일들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때, 모든 사람들이 뭔가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압력이 있을 때, 사단의 다음과 같은 암시들, 즉 우리가 곤란한 때를 겪을 것이며, 만사가 엉망이 되고 우리 앞에는 쓰라린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우리는 하늘의 복과 선을 가르쳐 주는 증거의 편린(片鱗)들을 주워 모으면서 “주님, 저는 당신과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일을 믿나이다. 저는 당신을 의뢰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서신 94a, 1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