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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높은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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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절제를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창 39장 8절).
3월 4일
사랑하는 준우, 찬우, 현우에게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로운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해.
준우는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거야. 그 모습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단다.
찬우와 현우도 운동회 때 열심히 달리지 않니?
성경에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마치 경주하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야.
준우는 학교에서도, 찬우와 현우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놀라운 소식이 있어.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에서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그 면류관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란다.
우리 준우, 찬우, 현우도 그 놀라운 선물을 받기 위해 오늘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자.
기억하렴. 우리가 받을 그 선물은 결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기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단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열심히 달려가기 위해서는 우리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해.
술이나 담배, 건강에 해로운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 몸을 망가뜨릴 수 있단다.
대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방법이란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자.
기도할게.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저희에게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우, 찬우, 현우가 이 땅에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에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고,
끝까지 예수님만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또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지식에 절제를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고전 9:24-27) 운동선수들은 신체적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기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훈련한다. 그들은 식욕에 탐닉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제어하며 각 기관의 모든 능력을 약화하거나 감소시킬 음식물을 삼간다. 그들은“허공을 치는 것”처럼 싸우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진짜 시합을 하고 있다. 경기에 나서는 경쟁자들은 썩어질 월계관을 구한, 그리스도인들 앞에는 쇠하지 않을 불멸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 하늘의 경주에서 상을 얻고자 하는 모든 자를 위해서는 충분한 자리가 있다. 만일 그가 건강하게 유지해 온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잘 달린다면, 그리고 그에게 비치는 빛에 따라 행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신경과 지력이나 체력을 약화시킬 어떤 습관이나 행위도 절제와 인내 다음에 오는 덕목인 경건을 실행하는 일에 부적합하다.… 자극적인 방종, 예를 들어 맥주, 포도주, 독주, 차와 커피, 아편, 담배 또는 건강에 해로운 물질에 빠지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절제는 우리가 인내라는 덕목을 더하기 전에 그 위에 우리의 발을 디뎌야 할 사닥다리의 가로장이다. 우리가 먹고, 입고, 일하고,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며 몸에 좋은 운동을 할 때, 있는 힘을 다해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 우리의 의무라는 점을 알고 절제해야 한다(원고 13, 18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