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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높은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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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를 온전히 이룸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장 9절).
3월 5일
사랑하는 준우, 찬우, 현우에게

오늘은 절제와 인내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
준우는 절제와 인내에 대해 많이 알고 있겠지만, 찬우와 현우에게는 조금 어려운 말일 수도 있어.
절제란 무엇인가를 너무 많이 하거나 갖지 않는 것을 말해.
인내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한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제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해.
준우, 찬우, 현우도 학교에서 공부할 때나 친구들과 지낼 때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
절제하면서 살다보면 나쁜 습관이 생기지 않고,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단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힘든 일도 많이 겪게 될 거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인내하며 이겨내는 것이 정말 중요해.
찬우와 현우가 숙제하기 싫을 때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처럼 말이야.
인내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거란다.

베드로 사도님은 우리에게 절제와 인내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어.
화가 날 때도 참고, 욕심이 생겨도 자제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셨지.
준우, 찬우, 현우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절제와 인내를 배워가고 있을 거야.

우리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려움을 잘 견뎌내자.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하나님이 함께 하시잖아.
준우, 찬우, 현우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잘 자라주길 엄마는 늘 기도하고 있단다.

이제 함께 기도해볼까?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절제와 인내의 지혜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우, 찬우, 현우가 매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어려움이 있어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는 믿음 주시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안에서 사랑과 평안이 가득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인내를 온전히 이룸

사도는 절제를 실천하는 데 성공하면 인내를 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련을 통한 인내는 우리 자신의 영혼과 우리와 교제하는 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을 말하거나 행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그대의 시련이 의도하는 바를 이루도록 하라. 만일 그대가 인내를 연습한다면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조용하고 흥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그대를 심하게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인내에 앞서 지식에 절제를 더한 베드로의 지혜를 알 수 있다. 이는 자극을 일으키는 모든 욕망을 정복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신경이 이 자극적인 물질의 영향 아래 흥분하게 되면, 중대한 악이 많이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말이나 행동으로 우리 자신의 양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도록 원칙과 확고한 목적에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품위를 지키며 비난과 실망과 상실과 역경을 견디기 위해서는 세상의 관습을 넘어서야 한다. 화를 잘 내며 성격이 나쁜 남자나 여자는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그가 입으로 가져가는 모든 잔은 쓴 쑥과 같을 것이며 그의 길은 거친 돌과 찔레와 가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시련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온전히 인내하면서 감당해야 할까 아니면 불평하면서 모든 것을 더 쓰게 만들어야 할까? 금의 불순물을 제거하려면 용광로에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정련하는 자의 감독 아래서 인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시련을 견뎌야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수심에 찬 슬픈 상태로 침체되기를 거부하면서, 모든 것을 기쁘게 여기며 하나님께 조용한 신뢰를 보여 주어야 한다(원고 13, 18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