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제물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대표함
1월 30일
우리의 삶에는 때로 시련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과정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과정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진실로 찾을 때 그분의 선하신 속성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반면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여 형제를 참소하고 악한 생각에 빠지게 만들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우리를 이끄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밝은 빛을 주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그 빛 가운데 걷는 길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 자신의 고집을 따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온전한 제물인 어린 양을 드린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자기 뜻대로 드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창4:7)"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회유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대는 지금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계신가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 쉽지 않을지라도 주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저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을 따르기 원합니다.
시련과 유혹이 찾아올 때에도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의 빛 안에서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아벨의 제물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대표함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애와 활동 가운데는 항상 시험과 시련의 때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품성을 시험하는 불리한 일들에서 남녀들과 청년들을 지켜 주기를 계획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활동들을 드러내시고 그분의 속성들을 그분을 찾는 겸비한 사람들에게 공급하실 것 이다. 사단 또한 그의 활동들을 드러내며 그가 유혹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그의 속성들, 그의 악한 추측들, 그의 악한 말들과 형제들에 대한 참소를 공급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원수의 편에 두는 사람들을 이런 사태와 상황으로 부터 보호해 주실 방법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강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분으로부터 반사되어 나오는 빛줄기 가운데 걸어갈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고 지도할 한 등(燈)으로, 그분의 밝은 빛줄기들을 주신다. 예수님의 말씀인 저 등은 우리의 발에 빛이다. 그러나 만일 백성들이 혐의 빛줄기로 말미암아 밝혀진 그 길을 무시하고 그들의 선천적 마음에 드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들은 어둠 가운데서 엎드러지되 그들이 어디서 엎드러지는지, 왜 엎드러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드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미워할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 가인은 주님께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계획을 따르기로 고집했다. 아벨은 주님의 지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확고부동했다. 그는 가인의 길로 돌이키지 않을 것이었다. 가인의 제물은 매우 가납될 만한 성격의 것이었지만, 정작 그 제물이 요구되게 만든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는 빠져 있었다. 두 형제 사이에 아무런 조화가 있을 수 없었고,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벨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짓는 일 없이는 가인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 주님께서는 그것이 옳기 때문에 아벨의 제물을 가납하셨다. 그의 제물은 그것이 그분의 독생자를 타락한 인류의 희망과 구원으로서 값진 희생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예표 하였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가납하시고 그의 제물을 인정하셨다는 아무런 징표도 주시지 않자 매우 화가 났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가납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 제물은 참된 상징인 세상의 구속주의 상징을 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인을 회유하시려는 그분의 방침과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와 변론하셨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서신 16,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