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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높은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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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의 장소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창 41장 15절).
4월 26일
사랑하는 준우, 찬우, 현우에게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구나.
준우, 찬우, 현우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단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는 어려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
마치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처럼 말이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선한 행동은 아무런 가치가 없대.
마치 더러운 걸레 조각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어.(사 64:6)
그런데 하나님은 그 선한 행동조차 기뻐 받아주신단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란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것을 예수님이 깨끗하게 만들어주시는 거야.

준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찬우와 현우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선한 일을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그런 너희들의 마음과 행동을 예수님은 기뻐하실 거란다.
비록 우리에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작은 행동도 귀하게 여겨주신단다.

사탄은 우리가 스스로 구원의 값을 치를 수 있다고 속삭이지만,
그건 거짓말이란다.
예수님의 희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다.

자, 이제 함께 기도해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의 부족함을 용서해주시고 예수님의 공로로 저희의 작은 선행도 기뻐 받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준우, 찬우, 현우가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서 자라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선행의 장소

누구도 인간의 어떤 행위가 자신이 범한 죄의 빚을 갚는 데 최소한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한적이고 편협한 주장을 하지 않게 하라. 이것은 치명적인 기만이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속죄를 탐구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아주 희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악한 자의 자녀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율법의 요구대로 선행을 요구하셨지만, 인간은 선행이 무가치하게 되어 버리는 죄 가운데 자신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만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71). 그렇다면 선행을 실제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매일 죄를 범하면서도 처벌받지 않는 죄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성실히 행하려고 애쓰는 자와 동일한 은총을 누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간주하시는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한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당신의 거룩한 조치로, 곧 당신의 과분한 은총을 통하여 주께서는 선행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만 가납된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자비의 행위, 곧 자선의 행동은 믿음의 열매들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상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행이 하나님께 가납되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의 향기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상해 주실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은혜이다. 우리의 행위에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호의를 입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의무를 행했을 뿐이며, 우리의 일도 우리 자신의 죄 된 본성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5년 1월 29일자). 그리스도는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인간이 자시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음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인간이 저지른 어떤 죄도 갈바리에서 이미 그 요구가 충족되었다(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