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God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맨 위로
맨 아래로
글씨크기

선택과 행함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레 21장 18절).
3월 19일
오늘 이 시간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 덕분에 우리에게는 두 번째 기회, 집행유예와 같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그분이 보내시는 경고와 기별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기만자의 그릇된 말에 현혹되어 그 길을 따르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무지를 선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맙니다.

순종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아를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기에 많은 이들이 불순종을 택하곤 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쾌락과 자기만족을 좇아 흘러가기 쉽습니다. 사탄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교묘히 이용합니다. 그는 우리를 온갖 즐거움과 흥분으로 도취시켜, 정작 우리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능력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갈망에 비례하여 자랍니다. 만약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하늘의 것들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능력을 계발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염려와 욕심에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빼앗기게 된다면, 우리의 영적 능력은 점점 약해져 결국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 몰두한 마음에는 하늘의 빛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우리의 마음과 품성 가운데 나타나기란 불가능해집니다. 경건을 실천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재능들이 무시되고 방치되고 맙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라는 주님의 초청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요? 불순종하고 감사할 줄 모르며 거룩하지 못한 우리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를 무시하고, 영적인 것들을 멀리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 왔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들보다 땅의 것들을 더 사랑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원고 28. 1899)

사랑하는 하나님, 저희에게 주신 두 번째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This day with God) 원문


선택과 행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형벌을 담당하였으므로 인간에게는 두 번째로 집행유예가 주어졌다. 인간은 그가 하고자 한다면 충성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경고와 기별을 거역하며 오히려 기만자의 말을 되풀이 하는 자들의 그릇된 말을 추종한다면 그는 자원하여 무지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고는 그 위에 임할 것이다. 순종이란 십자가를 높이고 자아부정의 생애를 살며 그리스도를 순종하면서 따르는 길이므로 사람들은 불순종을 택한다. 인간의 선천적인 마음은 쾌락과 자기만족으로 기울어진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것들을 많이 고안하여 사람들이 흥분 속에 도취되므로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자 하는 것이 사단의 술책이다. 쾌락에 대한 사랑은 전염성이 있다. 그러므로 쾌락에 빠지게 되면 마음은 항상 쾌락을 쫓아서 이곳저곳으로 헤매게 된다. 영광의 부(富)를 즐기는 능력은 우리가 그 부에 대하여 갖는 욕망에 비례하여 계발될 것이다. 하나님과 하늘 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이 세상에서 계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계발되겠는가? 세상에 대한 요구와 염려가 우리의 시간과 주의를 앗아가도록 허용된다면 우리의 영적 능력은 사용하지 않으므로 나약해져 소멸할 것이다. 세상 사물에 온통 몰두한 마음 가운데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출입구가 닫히게 된다.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은 마음과 품성에서 느껴 볼 수 없을 것이다. 경건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데 사용되어졌어야 할 재능들은 무시되고 소홀히 취급되었다. 그러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 17)라는 초성의 말을 들을 때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인간이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도 못한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선고를 받을 수 있을까? 인간은 하나님의 명백한 요구를 무시하고 종교적인 사물을 싫어하도록 마음을 훈련시켜 왔다. 인간은 하늘에 있는 사물보다도 땅에 있는 사물을 더 사랑한다(원고 28. 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