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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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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애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레 20장 6절).
2월 9일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변화를 일으킵니다. 마치 누룩이 가루 속에 들어가 구석구석 스며들어 온통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면,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규칙과 행동 원리가 생겨납니다. 그 표준은 바로 그리스도의 생애이지요.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분을 의지하게 되고, 더 많은 능력과 빛을 받게 됩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서 허영과 이기심, 독선을 내쫓게 되지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 때, 우리에게서 빛이 분명하고 확연한 광선으로 비칩니다. 우리는 영원한 실체에 대한 엄숙한 깨달음을 갖게 되고, 온 정신과 마음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심령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역사이지만, 내부에서 밖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그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진리의 누룩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고 있나요? 그 성결케 하는 능력으로 온 마음과 애정을 진리에 동화시키고 있나요? 역사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참된 개혁의 원칙을 실행하고, 심령을 변화시키고 성결케 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적인 존재로서, 진정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천국을 얻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이지요(원고 14. 1898).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 마음에 진리의 누룩을 넣어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소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This day with God) 원문


새로운 생애

누룩이 가루 속에 들어갈 때에는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온통 변화를 일으킨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도 그와 같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면 생애에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행동 원리가 생기게 된다. 품성에 대한 새로운 표준이 세워지게 되는데, 그 표준은 곧 그리스도의 생애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며 더욱 더 많은 능력과 더욱 더 큰 빛을 받게 된다. 날마다 그들은 저들의 마음으로부터 허영과 이기심과 독선을 추방하게 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을 받게 될 때에 빛은 저들로부터 분명하고 확연한 광선으로 비치게 된다. 그들은 영원한 실체에 대한 엄숙한 깨달음을 갖게 된다. 온 정신과 마음은 전혀 새롭게 된다. 누룩이 가루 속에 들어가 발효시키는 것처럼 진리의 누룩도 마음 가운데 들어오게 될 때에 영과 몸과 혼의 온갖 것들을 자체 속에 흡수시킬 것이다. 심령의 변화란 인간의 전인적(全人的)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 3)고 선언하셨다. 심령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적인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부로부터 밖으로 작용할 때에는 보이게 된다. 진리의 누룩이 그대들의 심령에 역사하고 있는가? 그 성결케 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온 마음과 온 애정을 진리에 동화(同化)시키고 있는가? 역사는 먼저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참된 개혁의 원칙들을 실행해야 한다. 심령은 변화되고 성결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한다. 전적으로 회심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이생과 더 나은 생애를 위한 유용성에 있어서 결코 적합한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지적인 존재들로서 우리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은 우리가 소망을 붙잡고 천국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는지 어떤지를 진지하게 솔직히 생각해 보는 일이다(원고 14. 1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