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참된 평안의 기초
11월 21일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구나.
준우, 찬우, 현우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단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어. 마치 엄마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느끼는 그런 포근함 같은 거란다.
준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우리가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배웠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어. 우리가 하나 되기를,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기를 바라셨지. 이것이 바로 참된 평안의 기초란다.
찬우와 현우도 잘 들어 보렴. 세상은 때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가라고 유혹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해. 그것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참된 기쁨과 평안을 줄 거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 33절).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단다. 예수님이 이미 모든 것을 이기셨거든.
사랑하는 아들들아,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아야 해. 그분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란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영원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평안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어. 그 평안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예수님 안에만 있는 선물이란다.
자, 이제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을 굳게 믿으며, 그분의 진리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을 담아,
엄마가.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모든 참된 평안의 기초
“너희도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믿을 때 오는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진리 안에는 위로와 소망과 평안이 있기 때문에 보혜사는 진리의 영으로 불린다. 허위는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다. 평안은 오로지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그분을 좇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이 연합을 얻기 위해 진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이는 진리를 통해서 우리가 거룩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모든 참된 평안의 기초가 있다. 인간의 지혜는 이 토대가 너무 편협하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변경하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여론에 양보하고 세상과 타협하여, 즉 활력 있는 경건을 희생시켜 연합을 이루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그분의 백성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하나님의 토대이다. 성화, 연합, 평안, 이 모든 것은 진리를 통하여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음울하고 거북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대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을 가진다면, 그분의 보혈은 그대의 영혼에게 용서와 소망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그대가 나[예수님]를 믿는다면 세상이 그대를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정복한 세상이다. 만일 그대가 나를 믿는다면, 내가 이겼기 때문에 그대는 이길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의심하는 것은 그분께 큰 욕을 돌리는 것이 된다. 그분의 모든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받아들여 순종하면 그것은 영원한 평안과 행복과 확신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다고 선언하신다. 그 평안은 우리의 것이다. 무한한 희생을 치르고 사신 것을 우리가 소유하게 하시려고 그분은 이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이 평안을 세상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부여해 줄 평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평안은 예수 안에 있다. 그분은 세상의 위협과 칙령들 그리고 세상이 제공하는, 사람을 유인하며 기만하는 약속들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주실 것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2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