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달란트가 주어짐
10월 12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단다. 준우에게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지혜를, 찬우에게는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을, 현우에게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재능을 주셨지.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선물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길 바라신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어. 준우도 찬우도 현우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가 이 선물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단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시간이라는 선물도 주셨어. 우리는 이 시간을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사용해야 해.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영향력도 하나님의 선물이란다. 이것을 가장 높고 고상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거야. 우리의 지성도 하나님이 맡기신 재능이고, 우리의 동정심과 사랑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할 소중한 재능들이지.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란다. 우리가 배운 모든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미래까지도 말이야.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많든 적든, 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신단다.
준우, 찬우, 현우도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거야.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을 거란다. 성경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태복음 25:23)
이 기쁨은 천국에 가서야 받는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께 신실한 우리는 이 땅에서도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어.(영문 시조, 1893년 1월 23일자)
자, 이제 우리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주신 귀한 선물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작은 일에도 신실하게 충성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모든 달란트가 주어짐
하나님께서는 그저 몇몇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달란트를 주지 않으셨다. 그분의 사업에 사용하도록 특별한 선물을 각 사람에게 위탁하셨다. 주님에게서 귀한 달란트를 받은 많은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왕국 진척에 사용하기를 거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의 사용에 대하여 하나님께 의무를 지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든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사는 사람이든 간에 모든 사람은 뭔가 위탁받은 것이 있다. 그들이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왜곡되게 사용하면 창조주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인간 가족은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높고 재능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고 미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선물이 주어졌다. 시간은 하나님이 위탁하신 선물로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감화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가장 높고 고상한 목적을 촉진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성은 위탁받은 달란트이다. 동정과 애정은 우리를 사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신성하게 보호하며 증진시켜야 할 달란트이다. 우리의 존재와 미래의 잠재력 전체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다. 모든 방면에서 받은 교훈과 훈육과 기술은 그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자본 또한 주님의 것이며, 그것을 늘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이자이며, 그것은 합법적으로 주님의 것이다. 위탁받은 양이 많든 적든, 주님께서는 그분의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 할것을 요구하신다. 사람들이 하늘의 승인을 받는 것은 위탁받은 양이나 취득한 이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신실성, 하나님께 대한 충성, 그분께 바친 사람어린 봉사이다.“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23절). 이 기쁨의 상급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서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실한 종은 이생에서도 그것을 미리 맛보고 있다. (영문 시조, 1893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