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되신 그리스도
9월 20일
우리가 애써 하나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품성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닮아가기 위해 날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참된 품성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들이 개인의 구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순결한 삶을 산다면, 하나님에 대한 더욱 분명하고 고귀한 이해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고상한 품성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할 순 있겠지만, 청중들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줄 순 없을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고 희생적인 노력으로 진리를 증거하며, 오류에 빠진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이어주는 사랑의 금빛 고리가 될 것입니다.
참된 성화는 신자들을 부드러운 동정의 띠로 그리스도와, 그리고 서로 연결해줍니다. 이런 연합은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히 흘러 넘쳐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다시금 흘러가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지녀야 할 자질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온전히 닮은, 그분의 사랑과 인내, 이타심, 선함입니다. 사람이 형제를 향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갖지 않고서 영생에 이르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크고 치명적인 기만입니다(원고 133. 1899).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함께 기도하며 묵상의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시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게 하소서. 매일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참된 품성을 나타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This day with God) 원문
길 되신 그리스도
우리가 애써 찾는다고 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품성을 통하여 나타내셨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그리스도와 더욱 같이 되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품성을 알 수 없다. 신자들이 개인의 구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순결한 생애를 살 것 같으면 하나님께 대하여 더욱 분명하고 보다 높은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이 고상한 품성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바른 빛으로 나타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교는 할 수 있으나 청중들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지는 못한다. … 진리를 받아들이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오류 가운데 빠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진지하고도 자아희생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저들의 사랑은 사랑의 금 고리로써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켜 줄 것이다. 영혼은 거룩하고 고상한 연합을 통하여 그분과 결합된다. 참된 성화는 부드러운 동정의 띠로써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주며 이웃과 결합시켜 준다. 이와 같은 연합은 마음속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의 풍요한 시내를 끊임없이 흘러 보내어 이웃을 위한 사랑 가운데 또 다시 흐르게 한다. 모든 사람이 소유해야 할 필수적인 자질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완전하게 꼴 지운 그분의 사랑과 인내와 이타심과 선하심이다. … 사람이 형제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크고도 치명적인 기만이다(원고 133. 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