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사랑하여
2월 22일
오늘은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해.
예수님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장 훌륭한 분이셨단다.
예수님은 언제나 깨끗하고 정직하셨어. 그리고 사랑과 칭찬을 받기에 충분한 모든 것을 갖추고 계셨지.
하지만 예수님은 화려한 파티나 무도회에 가신 적이 없었어.
그 대신 언제나 우아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셨단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지혜로우셨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셨어.
쓸데없는 즐거움이나 자신을 내세우는 일은 하지 않으셨지.
유년 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셨단다.
준우, 찬우, 현우도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좋겠구나.
준우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찬우와 현우도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길 바란단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으셨어.
가시밭길을 걸으셨고, 슬픔도 겪으셨지.
심지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도 받으셨단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이겨내셨어.
우리에게 완벽한 모범이 되어 주신 거야.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단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예수님은 해가 갈수록 키도 크시고, 지혜도 많아지셨대.
절제 있는 삶을 사셨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지.
건강한 몸과 바른 정신을 가지고 계셨어.
너희들도 예수님처럼 자라나길 바란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렴.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거야.
그러면 너희의 생각은 더 깊어지고, 마음은 더 넓어질 거야.(서신 17, 1878)
자, 이제 함께 기도할까?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귀한 모범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感謝합니다.
준우, 찬우, 현우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을 닮은 아이들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품성은 전례 없이 탁월한 품성으로, 순결하고 진실하며 사랑스럽고 좋은 평판을 받을 만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하였다. 우리는 그분이 즐거운 파티나 무도회장에 가신 적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은 완벽한 우아함과 예의 바른 태도를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는 풋내기가 아니셨다. 그분은 생애의 초년 때도 지적 능력 면에서 뛰어나셨다. 그분은 청년 시절을 나태 가운데 낭비하지 않았으며, 감각적인 쾌락이나 자아 방종이나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에 허비하지 않았다. 유년 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그분은 한 시간도 헛되이 사용하지 않았으며, 전혀 남용하지 않았다. … 예수님은 죄가 없었으며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예를 제외하면, 그분이 처했던 상황은 그대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대는 그분을 짓눌렀던 무게와는 다른 무게로 짓누르는 어려움이나, 그분의 심령이 경험하지 못했던 슬픔을 갖고 있지 않다. 그분의 감정은 그대의 감정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무시와 무관심으로 쉽게 상처받을 수 있었다. 그대의 길이 가시밭길인가? 그리스도의 길은 10배나 더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대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그분도 고통을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모본이 되시는 것은 얼마나 적절한가! … 영감의 기록은 그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그분은 해가 지남에 따라 키가 자라나신 것처럼, 지식도 증가하셨다. 그분은 절도 있게 사셨다. 그분은 귀중한 시간을 쾌락에 빠져 낭비하지 않았다. 그분은 진실로 건강한 몸과 참된 정신력을 소유하고 계셨다. 그분의 체력과 정신력은 그대나 다른 젊은이들의 경우처럼 신장되고 발달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의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분의 연구 대상이었다. 예수님을 그대의 표준으로 삼으라. 그분의 생애를 닮으라. 그분의 품성을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행하라. 그대의 능력을 본래 크고 장대한 영원한 사물에 활발하게 접촉할 때, 그대의 지적 능력에 새로운 샘이 더해질 것이며, 그대의 사상에 더욱 넓은 시야가 전개될 것이다(서신 17, 1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