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실 된 겸손”
8월 19일
사랑하는 아들들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기보다는 그들 안에 있는 선한 면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단다. 만약 우리가 늘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산다면, 우리 자신도 의심받게 될 거야.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인내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해. 준우도 알다시피 육체의 상처는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잖니. 하지만 우리가 받은 수많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한다면 슬픔도 기쁨으로 바뀔 거란다.
찬우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우리 자신을 사랑으로 대하는 거란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맡기고, 어떤 오해도 두려워하지 말자.
현우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사탄은 우리 사이에 불신과 질투심을 심어 분열을 조장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단다. 그분의 기도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보자.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의 잘못을 꾸짖기 위함이 아니란다. 진리 안에서 우리는 겸손해지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돼. 겉모습뿐 아니라 우리 영혼 깊은 곳까지 변화시키는 게 바로 복음의 능력이지.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 세상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어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해. 우리 가정이 먼저 주님 안에서 화목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자꾸나.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이해심과 겸손함을 주셔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작은 오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가장 진실 된 겸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행동 위에 가능한 한 최선의 건축물을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만일 우리가 의심하는 악에 항상 빠져 있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의 자리에 둘 위험에 처할 것이다.…우리는 때때로 감정에 상처를 입고 성격이 시험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바람대로 인내하고, 오래 참고, 겸손하며, 온유해야 한다. 정신적 상처나 육체적 상처가 결코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동안에, 오, 우리에게 주어진 수천 가지의 선행과 친절한 행위들이…태양 앞의 이슬처럼 마음에서 지나가 버리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모본은 스스로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 곧 우리의 평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잘못된 인상을 바로 잡아 우리의 입장을 호의적인 빛 가운데서 제시하고자 걱정하지 말라. 서로를 위해 사려 깊은 태도와 인내를 배양하는 일에 나태함으로 불화와 불신과 흠잡는 일과 일반적인 분열이 조장되었다. 하나님께서 노력하라고 촉구하시는 바는…그리스도의 기도 내용인, 우리가 이 큰 악을 버리고 그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말이 응답되게 하라는 것이다.…난폭하고 교만하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편협한 마음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실, 즉 그리스도인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세상에서 없애 버리기 위하여…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사단이 하는 특별한 일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단순히 오류와 악을 처리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다.…진리는 교만을 낮추고 마음을 친절하고 상냥하며 겸손하게 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거룩하게 하고,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 전인(全人)을 이루도록 마련된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가장 진실 되게 겸손하다. 연합 전선을 이룬 가운데 경건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곧 습관적으로 부드러운 감정과 친절한 기질과 서로의 평판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보여 주는 신자들을 세상이 볼 수 있을 때,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완벽하다(서신, 25, 18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