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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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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율법의 옹호자

“그들이 또 수소와 수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아론에게로 가져다가”(레 9장 19절).
2월 22일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율법을 제거하면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탄의 교묘한 술책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질서를 위한 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은 바로 십계명으로, 인류의 도덕적 기준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살인자, 간음자, 도둑 등이 이 율법을 어기면 처벌받는 것을 압니다. 마치 경찰관 곁에 수갑이 채워진 채 서 있는 범죄자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이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하늘의 교리인 양 말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악한 일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욕망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 각자에게는 신앙의 시험과 시련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범죄자의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노아처럼, 우리도 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비록 온 세상이 부패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사랑하는 그대여, 이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결심합시다.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기로 마음먹읍시다. 그 길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우리에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주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유혹의 순간에도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하나님의 율법의 옹호자

하나님의 율법들을 제거해 버리면 국가가 행복해지는가? 이곳의 (유럽의) 국가들은 그들 나름의 법을 가지고 있다. 이들 국가의 시민들의 안전은 이 법을 순종하는 데 달려있다. 우리는 이들 나라들이 시민들에게 법의 준수를 얼마나 엄격하게 요구하는지를 안다. 한 경찰관이 손과 발에 수갑을 차고 있는 한 사람 곁에 서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나라의 법을 범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자유를 상실했고, 법을 범했기 때문에 감옥에 보내진다. 그런데, 우주의 주님이 그분의 왕국을 다스리시는 법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율법이 세상의 거민들에게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혹은 하늘의 교리인가? 십계명은 하늘과 땅에서 위대한 도덕적 의의 표준이다, 이 위대한 율법은 모든 나라들과 모든 가족들에게 모든 율법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되었고 더 이상인류에게 구속력이 없다는 주장은 얼마나 교묘한 마귀의 술책인가? 우리는 살인자, 간음자 그리고 도둑이 즉시 이 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법이 완전히 제거되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사악한 일들을 마음대로 행할 자유를 갖기를 원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법 당국에 의해 연행되는 사람을 볼 때 꾀 그 법을 지키지 않고 범했다는 것을 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 각 사람은 각기 나름의 시험과 시련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우리가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도록 부름을 받게 될 환경을 만드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결정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범죄자들 편에 서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노아처럼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 부패가 성행했기 때문에 노아는 자기 혼자 분리되어 하나님의 율법을 위하여 홀로 서는 것이 과연 자신에게 유익할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고귀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옳기 때문에 옳은 편에 섰다. (원고 86,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