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인 경험은 충분치 않음
11월 22일
우리는 때로 피상적인 것에 만족하며 살아갈 때가 있단다. 마치 배가 닻을 내리지 않고 표류하듯이 말이야. 그럴 때면 우리는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곤 해. 하지만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진실한 회개를 불러일으키신단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회개 말이야.
준우, 찬우, 현우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단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더욱 굳건히 서야 해.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단다. (벧전 2:9)
준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다 보면 시련과 유혹도 만나게 될 거란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와 성경 읽기로 영혼을 지켜야 해. 예수님도 이 무기로 사탄을 이기셨단다. 우리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고 말씀하셨어.
찬우와 현우도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빛 가운데 살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거란다. (영문 시조, 1904년 10월 26일자)
자, 이제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빛 가운데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세요. 준우, 찬우, 현우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마가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피상적인 경험은 충분치 않음
피상적인 일에 만족할 위험이 항상 있다.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 닻을 내리지 않고 이리저리 표류하며, 사단의 유혹에 놀이개감이 되는 것을 만족할 위험이 항상 있다. 하나님의 영께서 하시는 일은 심령 속에 참된 회개, 즉 그저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일상에 결정적인 개혁을 이루어 낼 회개를 불러일으키시는 일이다. 고뇌라는 단어만이 바르게 나타낼 수 있는 열심과 견인불발의 단호한 결심이 드러날 것이다. 불법이 성행하며, 불신자들과 회의론자들 혹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우리 중 누가 조류에 휩쓸려 멸망에 빠질 이유는 결코 되지 않는다. 거의 전 세계가 하나님을 버리고 있기에 우리가 더 확고하고 충성스럽게 서야 할 필요가 더욱더 크다. 우리는 의의 태양이 비추는 거룩한 광선을 모아 세상에 반사해야 한다. 사악하고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한다. 개인적인 깊은 경험을 갖고 있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인 싸움에서 마주칠 시련과 유혹의 시험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만사가 평탄하게 굴러갈 때 가장 평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의심이 영혼을 공격하고 사단이 우리 귀에 속삭여 암시를 줄 때, 우리의 방어선은 무너지고, 우리는 그를 저항하고 물리칠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유혹자의 계교에 급속히 굴복하고 만다. 선한 충동을 갖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기도와 성경 연구로 영혼을 두르는 방어선을 쳐야 한다. 이 무기로 무장하신 예수님은 전쟁터에서 우리의 간교한 원수와 조우하셨고, 그를 이기셨다. 우리 또한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정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분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요 15:5)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처럼 빛 가운데 행하는 참으로 겸손한 영혼은 아무도 사단의 기만적인 계책으로 인해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영문 시조, 1904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