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계는 소망과 안위의 기별을 가져다줌
8월 13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생명과 지혜, 기쁨을 주시는 분이에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한번 볼까요? 모든 생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멋지게 만드셨는지 생각해보세요. 해님은 따스한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 주시고, 비와 이슬은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지요. 산과 바다, 들판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어요. 시편 기자도 이렇게 고백했어요. "모든 생물이 주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때에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지요. 주님이 손을 펴시면 그들은 좋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시편 145:15-16)
하나님은 사람을 거룩하고 행복하게 창조하셨어요. 에덴동산에는 죄도, 슬픔도, 죽음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바람에 죄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눈물과 아픔, 죽음이 생겼지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힘들 때에도 함께 하신답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어요.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 (창세기 3:17) 가시나무, 엉겅퀴 같은 것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훈련이랍니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려고 말이죠.
세상이 힘들어 보여도 슬픔만 있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주세요. 엉겅퀴에도 꽃이 피듯이, 가시덤불 속에서도 아름다운 장미꽃을 볼 수 있잖아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글씨는 예쁜 꽃송이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마다 쓰여 있어요. 노래하는 새들, 향기로운 꽃들, 푸른 나무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거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세요. (정로의 계단, 9, 10)
자, 이제 같이 기도해 볼까요? 사랑의 하나님,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저희에게 사랑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처럼(To be like Jesus) 원문
천연계는 소망과 안위의 기별을 가져다줌
천연계와 계시(啓示-성경을 의미함)는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생명과 지혜와 기쁨의 근원이시다. 천연계의 기이하고 미묘한 것들을 보라. 그리고 그것들이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필요와 행복에 얼마나 적당한가를 생각하여 보라. 온 땅을 비추는 일광과 적시는 우로(雨露), 산과 바다와 들, 이 모든 것은 조물주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과연 모든 피조물의 필요를 날마다 공급하여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시인의 글에 이런 아름다운 구절이 있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시 145:15, 16).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매우 거룩하고 행복스럽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땅이 조물주의 손으로 창조되었을 당시에는 쇠퇴의 증상(症狀)이나 저주의 음영(陰影)이 도무지 없었다. 그렇던 것이 하나님의 율법, 즉 사랑의 율법을 범한 까닭에 비애와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나 비록 죄의 결과로 생기는 고통 중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 있다.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땅은 너(사람)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창 3:17)다고 하였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곧 사람의 생애를 괴롭게 하고 근심케 하는 고난과 시련도 죄가 빚어낸 영락(零落)과 퇴폐(頹廢)에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필요한 훈련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의 유익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세상이 비록 타락하기는 하였으나 모두 슬픔과 비애만은 아니다. 천연 그 자체 가운데서 희망과 위안의 기별을 찾을 수 있다. 엉겅퀴에도 꽃이 피고 가시덩굴에도 장미꽃이 덮인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라”라는 문구는 방싯방싯 피는 꽃봉오리마다 뾰족뾰족 돋아나는 풀싹마다 기록되었다. 공중을 즐거운 노래로 충만케 하는 아름다운 새들, 향기를 풍기는 연연하고 고운 꽃들, 잎이 청청하게 무성한 수풀의 교목(喬木)들, 이 모든 것은 우리 하나님의 인정 있고 자부적(慈父的)인 권고(眷顧)와 그 자녀를 행복하게 하시려는 그분의 갈망을 증거한다(정로의 계단,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