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2월 27일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바쁜 삶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한 눈을 주셨습니다. 그 눈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줄 것이라 기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꿋꿋한 신앙,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순수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언 4:18~19)
그대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지요? 에녹처럼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그런 사람의 품성은 조화롭고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세속에 물들고 이기적인 욕심을 좇을 때, 우리의 영적인 눈은 어두워집니다. 사탄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 갖은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는 바로 물질에 대한 욕심인데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네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장 24절)
사랑하는 그대여,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온전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저의 눈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세상의 헛된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 되게 하소서. 제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여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일편단심
이 구절은 어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네 눈`이라고 말한다. 누가 우리 대신 눈 노릇을 해주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인 이 풍성한 경험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일편단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 길을 택하면, 나의 재산이 증가할 것인가 아니면 줄어들 것인가? 라고 묻지 않고, 자아와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한결같은 그리고 꿋꿋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성을 많이 지녀야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발은 미끄러지지 않을 것이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일편단심 그분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분투 노력하면서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하나님께 봉사하는 데 바칠 것이다. 에녹이 그러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의 마음은 눈에 보이는 불결한 것들과 불완전한 것들로 인해 더럽혀 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품성은 조화되고 균형이 잡힐 것이며 일관되고, 명랑하고, 진실될 것이다. “그러나 네 눈이 악하면” 만일 그대가 이기적인 일에 마음을 쓰고 그 목적만을 위하여 일한다면, 풍성 전체에 결함이 생기고, 온몸이 어둠으로 가득 찬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분의 품성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영적인 시력에 결함이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하늘로 향해 가는 길은 사단의 악마적인 그림자 때문에 어두워진다. 사단은 그렇게 만들기를 매우 기뻐한다. 이는 그가 눈이 가려진 그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양심은 규제하는 기능이다. 양심이 왜곡되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다. 생애에서의 그들의 목표는, 세상을 향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대한 반역 가운데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의 생애 전체는 실패작이다, 그것은 일그러지고, 이중적이며, 모든 기능들은 그릇된 방향 으로 돌려졌다. 그들의 공언(公듬)이 모두 옳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믿음은 비뚤어졌고, 그 사실은 다른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드러난다.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네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셔 섬기지 못하느니라.\” (서신 128, 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