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축하나님께서는 모든 거래에 관심을 가지심
8월 7일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직과 공정함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단다.
준우, 찬우, 현우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실까?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공정한 저울은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언 11: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에 정직하고 바르게 행동하기를 바라신단다.
준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우리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심지어 게임을 할 때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단다.
찬우야, 네가 동생 현우에게 장난감을 나눠줄 때 어떤 마음으로 주었으면 좋겠니?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동생에게 더 많이 주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이란다.
우리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삶을 산다면 주님을 두려워할 수 없게 될 거야. 주님께 헌신한 우리 가족은 모든 부정함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해.
현우야,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어야 한단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린 친구들을 특별히 사랑하시거든.
우리 현우가 친구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멋진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거야.
비록 천천히 가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우리 가족이 되자.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든든한 방패란다.
우리 가족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에 맡기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꾸나.
오늘도 묵상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기도로 마무리 해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족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해주세요.
매일의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준우, 찬우, 현우가 믿음 안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일의 축하나님께서는 모든 거래에 관심을 가지심
속이는 저울은 공정치 못한 모든 거래, 곧 공정해 보이는 외양 아래 이기심과 불공정을 감추는 모든 시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행위에 조금도 호의를 베풀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거짓 방법을 미워하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기심과 탐욕을 싫어하신다. 그분께서는 무자비한 거래를 참지 않으시며 동일하게 되갚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정직하게 벌어들이는 일꾼들을 번영하게 하시고 이기적인 행위로 얻는 모든 재물을 저주하실 것이다. 사람이 이기심이나 약삭빠른 거래에 탐닉하게 되면,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도 공경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모든 부정을 금하고 그분의 자비와 선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주께서는 아무도 편애하지 않으실 것이나,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들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풀지 않는 자들의 행동은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 3권, 1158, 1159). 그대의 신앙은 분명히 그대를 모든 천한 술책에서 벗어나게 한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옳은 일을 고수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성공이 보장된다. 엄정하게 성경의 원칙에 따라 천천히 정직하게 행동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사업을 중단하라.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시는 어떤 거래도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어떤 빚도 지불되어서는 안 된다. 그분은 매우 현명하고 영원하신 공의의 수호자이시다. 그대는 사람들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에서 하나님을 절대로 배제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손은 방패처럼 당신의 모든 피조물 위에 펼쳐진다. 누구도 그분의 손을 치지 않고는 그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대도 그분의 손을 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할 수 없다. 그 손은 공의의 검을 쥐고 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할지 주의하라. 업무를 통해 비치는 그대의 빛, 곧 실제적인 경건을 행하시는 일은 그대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설교나 신조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대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을 통해 그대를 살펴보고 따져 보며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대가 교회에서 말하는 바의 결과는 그대가 매일의 업무를 통해 나타내는 결과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서신 5, 187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