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함
7월 23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요단강 둑에 엎드리셨을 때, 빛나는 금빛 비둘기처럼 내려온 한 줄기 밝은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려왔지요. (마 3:17) 우리는 이 말씀을 거듭 읽으면서도 그 깊은 의미를 가끔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대에게 너무나 소중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그대가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긴 인간의 팔로 타락한 인류를 감싸 안으시는 한편, 신적인 팔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를 붙잡고 계십니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땅과 하늘,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나님을 연결해 주시지요. 예수님을 통해 하늘과 멀어졌던 이 땅은 다시 하늘과 이어졌고,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의 광야로 걸어 들어가셨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맞닥뜨렸던 것보다 백배나 더 혹독한 유혹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결코 타락하지 않고 생명나무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에덴의 본향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낙담하지 마십시오. 행복과 희망, 평강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세상의 평범한 일에 허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복음 안에 담긴 약속을 굳게 붙잡을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저는 그 어떤 시련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결코 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저를 위해, 그대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두고 위로부터 오는 피난처를 누립시다. 세상이 뭐라 하든 개의치 맙시다.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제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원고 16, 1886)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가 마침내 승리하려면 반드시 싸워야 할 영적 전투가 있습니다. 영과 육이 서로 대적하며 싸우지만, 승패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길, 그것이 바로 승리의 길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며 묵상합시다. 사랑의 주님, 저희를 구원하시고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만이 저희의 소망이요 피난처이십니다. 어려운 싸움 가운데서도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함
침례 받으신 후 그리스도께서 요단강 독에 엎드리셨을 때에 빛나는 금비둘기처럼 내려온 한 밝은 빛이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우리는 이 말씀들을 거듭거듭 읽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그 말씀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그 말씀은 그대에게 그대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가납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긴 인간의 팔로는 타락한 인류를 감싸고 계시는 한편, 그분의 신적인 팔로는 전능하신 자의 보좌를 붙잡고 계시며 그렇게 하여 땅과 하늘 그리고 타락한 유한한 인간들과 무한하신 하나님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하늘과 유리되었던 이 땅은 하늘과 연결되었다. 타락한 인류가 다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과의 교통이 열렸다. 여기서 예수님은 시험의 광야로 들어갔으며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러왔던 것보다 일백 배나 더 혹심한 시험이 닥쳐왔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았다면 그들은 결코 타락하지 않고 생명 나무에 나아갈 권리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제 에덴 본향으로 다시 인도될 것이다.… 낙담하는 자에게 행복, 희망 그리고 평강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이 세상의 평범한 일들에 투자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우리 앞에 제시된 그 약속을 부여잡을 믿음을 원한다.… 나는 예수에게서 비할 바 없는 매력들을 본다. 나는 내가 결코 질 수 없는 어떤 시련들이나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자아 부정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 대신 돌아가신 분을 본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위하여 헛되이 죽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하나님과 옳은 관계 안에 두며 위로부터 온 바른 피난처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이 내게 뭐라고 말하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주여 어떻게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나요? 어떻게 제가 이 세상에서 제 사명을 수행할 수 있나요?” 이다.… 만일 우리가 마침내 이기는 자가 되려면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싸움이 있으며 우리는 영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와 육체를 거스려 싸우는 영을 발견할 것이다. 어느 편이 승리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원고 16, 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