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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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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어진 기별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

“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지니라”(레 16장 28절).
11월 6일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방식이 우리를 유혹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때면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사랑의 제자 요한은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분의 가르침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마치 위험한 줄타기와도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교회사를 돌아보면, 개혁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비록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야 합니다.

과거의 개혁자들은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감옥과 고문, 심지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그들은 믿음을 지켰지요. 그들에게 진리는 생명보다 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진리는 여전히 소중합니다.

루터 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니 내가 진리를 거부해도 용서하실 거야. 지식인들과 종교 지도자들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내가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 안전할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넓은 길이 멸망으로 인도한다고 경고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4)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대에 비추어진 빛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의 날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 바로 신뢰와 기회와 특권의 날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주신 진리의 빛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담대히 전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승리하시는 그리스도(Christ Triumphant) 원문


우리는 주어진 기별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

유순하고 사랑하는 제자(요한)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명확하고 분명하다. 예수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하면서 그분의 계명들 중 하나에라도 무관심함으로 행실로 그분을 부인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종교 개혁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결코 정체되어 개혁하는 일을 그쳐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선두에 서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하나님의 일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그분의 백성들은 쟁투와 시련을 통과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믿음의 이론들에 고정되지 말고, 그분의 말씀에 계시된 열려지는 진리를 받아들일 새 빛을 위해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교회의 역사는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오류와 암흑 가운데서 진리가 진보해 온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다수가 신성한 진리를 소중히 품고 찾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개혁 사업에서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은 반대, 고문 그리고 죽음을 당해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린 감옥과 고문과 사형의 위협을 받을 때에 그들은 그들의 때를 위한 그 진리를 고수하는 일이 충분히 중요하며 그들의 믿음을 희생하기보다는 차라리 생명을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자신들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그 진리는, 순교자들의 시대에 중요했듯이 중요하다. … 만일 루터 당시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을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가리려는 입장을 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너무나 자비하시기 때문에 인기 없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서 나를 정죄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지식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나는 세상이 그것을 배척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 나는 내 신앙에 만족하고 있다. … 나는 군중들과 함께 가는 모험을 감수할 것이다.” 만일 내가 많은 군중들과 함께 가고 있다면, 성경은 내가 사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있다고 말해 준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우리 시대에 비치고 있는 그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이 그들의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을 위하여 고민 가운데 우셨다. 그날은 그들의 신뢰의 날이요, 그들의 기회와 특권의 날이었다. … 사악한 배은망덕, 공허한 형식주의 그리고 수백 년에 걸친 위선적인 불성실이 그분의 눈에서 억누를 수 없는 고뇌의 눈물이 흘러나오도록 만들었다. (서신 35a, 1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