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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높은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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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희생하고 있는가?

“르우벤이 아비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창 42장 37절).
7월 14일
사랑하는 준우, 찬우, 현우에게

엄마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잘 자라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단다.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들이야.

준우야, 너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 수 있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울 때도 있고, 진실을 말하는 게 쉽지 않을 때도 있지.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서 좋은 것들을 포기하는 건 아니란다.

찬우야, 넌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걸 믿으면 좋겠어.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주시는 분이시거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단다.

현우야, 우리 막내. 너는 아직 어리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걸 엄마는 알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재미있는 것들을 못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시는 분이란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상속자로 삼으셨단다. 세상의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영원할 거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포기한 것들은 사실 우리가 희생했다고 부를 만한 것들이 아니란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야. 우리에겐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는 작은 희생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란다.

자, 이제 우리 함께 기도해 볼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이렇게 좋은 아들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 안에서 자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준우, 찬우, 현우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우리는 정말 희생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에게서 기쁨과 세상적인 즐거움을 앗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않는다고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이 혼란과 가난과 고통을 겪는 일이 있는가? 있다. 이런 일은 이생에서 예상 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는 죄인은 생애의 이러한 질병에서 자유로운가? 우리는 종종 그들이 깊은 혼란과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자신이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기 없는 진리를 붙들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고백함으로 그들 안에 겸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길이 힘들고 자신이 희생을 많이 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전혀 희생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이 하나님의 가정에 양자로 입적되었을지라도, 그들이 무슨 희생을 했단 말인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친척들과의 우정을 다소간 해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 맞바꾼 것들을 바라보라. 구원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어 불멸의 유업을 받게 되도록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며, 높임을 받은, 정말로 높임을 받은 그들의 이름을 바라보라. 우리가 진리를 위하여 오류를, 빛을 위하여 어두움을, 의를 위하여 죄를, 영원히 계속될 영예를 위하여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순결한 보물을 위하여 멸망할 이름과 세상의 유업을 포기하는 것을 우리 편에서 희생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생에서도, 그리스도인은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의지할 분을 모시고 있는데, 그분은 모든 시련을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나 죄인은 시련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그는 사단에 의해 결박된 채, 흑암에 싸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덤으로 내려간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합법적인 포획물이기 때문이다. 만일 계속해서 감사해야 할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만일 이생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충성된 그리스도인이다. 만일 우리가 구원이 얼마나 값비싸게 지불된 것인지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면, 우리가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서신 18, 185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