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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높은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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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적절하게 낮춤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창 41장 7절).
4월 18일
사랑하는 준우, 찬우, 현우에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단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해.

준우, 찬우, 현우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 교만한 마음들이 사라지게 된단다.
마치 먼지 속에 묻히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단다.(서신 20, 1897년)

준우야, 너는 예수님의 사랑의 빛 가운데 살아가면서 교만한 마음들이 낮아지는 걸 느끼고 있을 거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않게 된단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되지.(청년 지도자, 1900년 3월 15일자)

찬우야, 현우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이 되셔서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셨어.
우리가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 안에 교만함은 사라지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배우게 된단다.
자신을 자랑하려는 마음은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는 삶을 살게 되는 거야.

사랑하는 아들들아,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이라는 우상을 내려놓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시길 기도하자꾸나.(원고 29, 1900년)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게 해 주세요.
교만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준우, 찬우, 현우가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마음을 적절하게 낮춤

인간의 마음을 제 위치에 놓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갈바리의 십자가이다.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자아를 영광스럽게 하고자하는 모든 욕망은 티끌에 묻힌다. 우리가 올바로 바라볼 때, 마음의 겸양과 겸손을 촉진하는 자아를 낮추는 정신이 나타난다. 십자가를 명상할 때, 우리는 그것이 모든 믿는 자에게 가져다 준 놀라운 은혜를 인식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찬양과 교만을 낮출 것이다. 자아를 높이는 일은 없으며, 참된 겸손이 있을 것이다(서신 20, 1897년).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반사되는 빛은 온갖 교만한 생각을 낮출 것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그들에게 제공된 위대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예수께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영광 돌리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성취로 교만하거나 자신의 능력 때문에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모든 재능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할 것이다(청년 지도자, 1900년 3월 15일자).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신 그리스도의 겸손은 우리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주제를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주의 깊게 연구할 때, “나”라는 소리는 훨씬 더 적게 들리고 “그리스도”라는 소리는 훨씬 더 많이 들릴 것이다. 인간 대리자와 하나님 사이에 서서, 모든 인생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이 흘러나오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자만심이다. 우리가 자아 부정의 길과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을 따른다면 겸손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때, 우리는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울 것이다. 자아를 위해 헌신하려는 생각은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이다(서신 100, 1895년). 하나님의 충성되고 겸손한 신자들은 자신의 마음에서 “자아”라는 우상을 제거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만유가 되실 것이다(원고 29, 19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