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대기식 종교는 안 됨!
12월 5일
엄마가 오늘은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구나.
준우야, 너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아주 튼튼하고 아름다운 옷감과도 같단다. 그 옷감은 하나님의 지혜로 짜여진 거란다. 우리가 그 옷감에 우리의 이기심을 섞어 넣으면 그 옷감은 망가지고 말아. 처음에는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색이 바래고 변색되는 거지.
찬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의 신앙도 그런 옷감과 같단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시련을 견디지 못해. 마치 낡은 옷에 새 옷감을 덧대봤자 소용없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우리의 낡은 옷, 곧 이기심 가득한 마음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새 옷, 곧 이기심 없는 마음으로 갈아입어야 해.
현우야, 너는 아직 어리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느끼고 있을 거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마음,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란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단다.(고후 5:17)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진짜 신앙이 아니야.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해.
사랑하는 아들들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구나. 우리 모두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자. 그것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길이란다. (영문 시조, 1902년 1월 8일자)
자, 이제 기도할까?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따르는 마음을 주세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아이들을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덧대기식 종교는 안 됨!
자아에 토대를 둔 종교는 무가치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기심과는 타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기지와 숙련으로 함께 엮은 수많은 실로 조직된 견고한 피륙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통해서만 이 직물을 짤 수 있다. 자신을 신뢰하면서, 그 속에 이기심의 실들을 끼워 넣으면 그 옷감은 망가진다. 처음에는 멋지게 보이지만 시험을 견디지 못하는 옷감의 종류가 많다. 색깔이 오래가지 않는다. 물에 빨면 바랜다. 여름의 열기에 변색되고 색깔이 날아간다. 이런 직물은 거친 취급을 견뎌 낼 수 없기에 별로 값어치가 없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날줄과 씨줄이 시련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면, 그 직물은 가치가 없다. 원래의 옷감에 새 옷자락을 덧댄다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낡아 허약해진 옷감이 덧댄 새 옷감에서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그 찢어짐이 전보다 더 커진다. 덧대는 것으로는 안 된다. 유일한 방법은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을 구입하는 것이다. 모진 시련을 받을 때 변색되고 끊어지는 실들로 조직된 자아의 종교를 버리고, 이기심이 조금도 없는 분이 직조하신 종교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계획만이 안전하다. 그분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라고 선언하신다. 구주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분이 덧대기식 종교를 가납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고무시키는 말씀을 주지 않으신다. 이런 종교는 무가치하다. 처음에는 자아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리스도도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곧 그리스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기심의 덧댐은 계속 증가하여 마침내 옷 전체가 그것으로 뒤덮일 것이다. 거룩한 본보기를 따라 형성된 종교만이 영구할 것이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려고 분투함으로써만 우리는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살 준비를 할 수 있다. (영문 시조, 1902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