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품성을 연구함
8월 28일
오늘은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단다.
준우, 찬우, 현우도 살면서 때로는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일들만 계속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사탄이 원하는 대로 살게 될지도 몰라. 사탄은 우리가 소망 없이 살기를 바라거든.
준우야, 너는 이미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깨닫고 있을 거야. 그 사랑을 느끼고 알게 된 우리에겐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할 의무가 있단다. 남의 실수를 계속 곱씹고 말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 중요해.
찬우와 현우도 상상 속에서는 완벽한 세상을 그려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과 같단다. 추수 때까지 우리가 함부로 가려내서는 안돼.
준우, 찬우, 현우야. 우리에겐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평가할 시간이 없어. 그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을 더 닮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 예수님은 불완전함도, 이기심도, 악함도 없으신 분이시거든.
우리 모두 이렇게 기도해 보자.
"사랑의 예수님,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낙심치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나누는 우리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아멘"
(서신 63, 1893년)
우리 가족 모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단다. 앞으로도 사랑으로 서로를 품어주는 가족이 되자.
사랑을 담아,
엄마가
우리의 높은 부르심(Our high Calling) 원문
그리스도의 품성을 연구함
만일 당혹하게 하는 사물들을 계속해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마귀가 원하는 대로 소망 없이 난감하게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낙담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타내는 데 실패했다고 남들을 비난할 때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사랑의 귀한 나무를 죽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애를 통해서 나타내신 사랑의 따스함을 개인적으로 인식하고 느꼈는가? 그렇다면 이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큰 실수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바라보며 말하기를 두려워하자. 그대는 마음에 비현실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고 이상적인 교회를 그려볼 수도 있는데, 거기서는 사단의 유혹이 더 이상 악을 행하도록 조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완전은 오직 그대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요, 교회는 가라지와 알곡이 자라는 들판으로 대표된 장소이다. 그들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란다. 사단의 주장에 따라 알곡이 뽑히면 안 되므로, 인간의 지혜대로 가라지를 뽑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누구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불완전함을 애써 평가하는 일에 짧은 일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 중 한 사람도 이와 같은 일을 할 시간이 없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계발해야 할 품성의 자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며, 게다가 이러한 품성과 모순되는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았을 때, 우리를 잘못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혹하는 원수에게 단호히 저항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자.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끄럽게 여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안에 불완전함도 없고 이기심도 없고 점도 없고 악한 얼룩도 없는 그리스도의 품성, 당신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당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신 그리스도의 품성을 더욱 열렬하게 연구할 것이다. 나는 이 모순된 그리스도인들의 불완전한 품성을 모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범한 실수들이 나를 인도하여 그들과 같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분처럼 될 수 있게 귀하신 구주께로 돌아설 것이다”(서신 63, 18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