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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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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한분이심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레 26장 14절).
9월 10일
오늘 이 시간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개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정원의 꽃들이 제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서로를 견주거나 방해할 이유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면, 이 다채로운 모습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이 다양한 재능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 함께 일하기를 바라셨죠. 우리는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될 텐데, 교회에는 그만큼 다양한 재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 되어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똑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마음을 품은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도 요한과 베드로는 전혀 다른 성품을 지녔지만, 각자의 독특함을 다듬어 서로를 도왔습니다. 진리를 향한 믿음과 진리의 성결케 하는 감화로 말이죠.

우리 앞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빛나야 합니다. 본받아야 할 이는 오직 그분의 품성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상급이 되겠죠.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분은 앞서 가십니다. 그분을 따른다면 의를 나누어 주셔서, 질서 잡힌 삶과 경건한 대화로 우리 안에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고, 그분과 함께 하늘 보좌에 앉을 자격을 줍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과 이웃의 영혼 속에 계신 그분은 서로 다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까다로운 성격도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주님께 순종한다면, 어찌 형제들과 불화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함을 깨달읍시다(서신 141. 1902).

사랑하는 하나님, 저희에게 주신 고유한 모습을 주님 안에서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This day with God) 원문


그리스도는 한분이심

사람들이 꼭 같은 품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견주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하늘 왕의 자녀일 것 같으면 우리가 그와 같은 다양성을 지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의 종들이 다양한 재능을 소유한 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바였다. 그분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여러 가지 상이한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된다. 우리는 서로 상이한 생각들을 가진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것인데 교회에는 다양한 재능들을 가진 사람이 필요된다. 하나님의 종들은 완전히 연합하여 일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모두 꼭 같이 사람은 아니지만 동일한 정신,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통된 정신을 소유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사도 요한은 사도 베드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각자는 진리를 믿는 믿음과 진리의 성결케 하는 감화를 통하여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자신의 독특한 성격과 기질을 죽이고 순화시켜야 하였다. 우리 앞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드러나야 한다. 우리가 모방해야 할 것은 그분의 품성이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주님의 영광은 우리의 보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께서는 우리 앞서 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따를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의를 나누어 주셔서 질서 잡힌 생활과 경건한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주는 것은 믿음과 행함이다. 그리스도가 분리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 영혼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의 영혼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다투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까다로운 성격에 대해서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의 의지가 주님의 의지 아래 통제를 받을 것 같으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형제들과 모순된 태도를 취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서로 조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서신 141.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