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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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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구속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레 25장 43절).
8월 15일
오늘 이 시간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5장 31절에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묵상을 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만약 그분께서 실패하셨거나 낙담하셨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전 생애는 자아를 부정하고 희생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아를 부정하고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셨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통 속에서도 그분의 신성한 능력은 변함없으셨습니다.

우리의 붉은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분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분은 고통 받는 강도의 요청에도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강도는 예수님을 정죄하는 종교 지도자들보다 오히려 더 나은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원고 84. 1897)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그 강도처럼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더욱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This day with God) 원문


거룩하신 구속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 31).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죄인을 구원하는 당신의 사업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셨거나 낙담하셨더라면 아담의 모든 자손이 가졌던 최후의 소망은 끝장이 났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자아부정과 자아희생의 생애이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매우 적은 이유는 자아부정과 자아희생의 정신 대신에 방종과 자아만족의 정신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오,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영혼들을 갈망하고 동경하셨던가? 그분의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해서 당신께서 치르신 희생을 통하여 당신의 의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당신의 신성, 곧 하나님이신 그분의 능력이 감소되지는 않았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범죄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하여 대속주에게 전가시키도록 하셨다. “진홍같이 붉은” 죄로 비유된 죄 된 세상의 죄는 우리의 확실한 보증이 되시는 그분께 넘겨졌다. …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인정하심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증오와 복수로 말미암아 당신의 인성이 고통을 받으실 때에 그분의 신성은 그것이 담당해야 할 일을 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만이 그 고통당하는 가련한 강도의 요구에 응답하실 수 있었으며 자유하신 분으로 그 사악한 범인에게 보증이 되실 수 있었다. 죽어가시던 구주께서는 당신을 죽여야 한다고 정죄하던 사람들보다도 그 강도가 훨씬 더 무죄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던 제사장과 서기관과 통치자들보다도 훨씬 더 죄가 없다는 것을 아셨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던 그 강도는 얼마나 놀라운 믿음을 가졌던가? 그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을 때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 가련한 강도의 기도 가운데는 어느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와는 다른 진정이 서려 있었다(원고 84. 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