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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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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안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함

“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레 25장 46절).
8월 18일
오늘 이 시간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을 여쭤본 젊은 법관의 이야기가 마음에 떠오릅니다(마 19:20). 그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말씀드렸지만, 과연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경건의 기초입니다. 형제에 대한 이타적 사랑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모든 이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위험과 궁핍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외면하지 않고, 잘못을 범한 자들이 더 큰 불행과 낙담에 빠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린 식구들을 대하듯 서로를 사랑으로 대할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부드러움을 키워나가며, 가정에 사랑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정함과 비난으로 가득 찬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시련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친절과 동정, 연민을 베풀지 못했다면 우리 역시 그런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정함을 깨닫고 회개할 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원고 62. 1894).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맞이하며, 서로를 사랑과 긍휼로 품어안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여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This day with God) 원문


가정 안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함

예수님을 찾아 왔던 젊은 법관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지킬 것을 말씀하시고 율법의 여러 교훈들을 차분히 열거하셨다. 그 젊은 사람은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 20)라고 하였다. 처음 네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것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고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것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참으로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그와 같이 행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주님께서는 머지않아 오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로운 일에서 오는 생애의 의무들을 이행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경건의 기초이다. 어떤 사람도 형제에 대하여 이타적인 사랑을 갖지 않는 한 그가 공언하는 바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장 큰 위험과 궁핍 가운데 있는 영혼들이 아무런 경고도 받지 않은 채 홀로 수고하고 애쓰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을 것이며 잘못을 범한 자들이 계속 그릇된 길로 벗어나 비판적으로 가혹한 사람이 되거나 그들이 홀로 더 큰 불행과 낙담 가운데 빠져 사단의 싸움터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님의 가족이 된 우리 형제들이 나보다 나이 어린 식구들을 취급하시는 대로 우리를 취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 가운데 부드러움을 배양하라. 가정생활에 있어서 그대 자신을 사랑의 분위기로 감싸도록 하라. 교회에 크게 만연된 정신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있다. 마음대로 남을 비난하고 낙담케 하며 시험과 시련에 처한 자들에게 부드러운 친절과 동정과 연민을 나타내는 일에 실패한 모든 사람들은 이미 남들이 겪은 그와 같은 경험을 자신도 하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무정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무정함에 대해 혐오하고 문을 열어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까지 자신이 동정을 나타내지 못한 연고로 다른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했던 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원고 62. 1894).